함께 배우는 수업 · 한국사
민주주의 발전: 4·19 혁명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무너뜨린 4·19 혁명(1960), 유신 체제(1972)와 신군부에 맞선 5·18 민주화운동(1980), 그리고 현행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헌법을 쟁취한 6월 민주항쟁(1987)의 위대한 역사를 배웁니다.
이 수업에서 해 볼 일
- 민주화 운동의 시기와 요구를 사건별로 구별한다
먼저 알면 좋은 것: 이승만 정부의 발췌 개헌(1952)과 사사오입 개헌(1954) · 박정희 정부의 5·16 군사정변(1961)과 10월 유신(1972) · 전두환 신군부의 12·12 사태(1979)
오늘의 목표
가입 없이 시작할 수 있어요. 설명을 읽고, 함께 연습한 뒤, 처음 보는 문제에서 직접 확인합니다.
1. 독재에 맞선 시민의 함성: 4·19 혁명(1960)과 유신 반대 투쟁
대한민국 헌정사는 집권 세력이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을 뜯어고치려 할 때마다 시민과 학생들이 피 흘려 민주주의를 되찾아온 위대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1. 4·19 혁명 (1960년, 이승만 독재 타도): - 배경: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발췌 개헌(1952, 대통령 직선제)과 사사오입 개헌(1954, 초대 대통령 중임 제한 철폐)으로 장기 집권을 이어갔고, 1960년 3월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사전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노골적인 3·15 부정선거를 자행했습니다. - 전개 및 결과: 마산에서 부정선거 규탄 시위 도중 실종된 고등학생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르자(4. 11) 국민적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4월 19일 전국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경찰의 발포에 맞섰고, 4월 25일 대학교수단 시위를 결정적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습니다. 이후 내각책임제와 양원제 국회를 골자로 한 3차 개헌이 이루어져 장면 내각(윤보선 대통령)이 출범했습니다. 2. 5·16 군사정변(1961)과 10월 유신 체제(1972): - 박정희 소장이 이끈 5·16 군사정변(1961)으로 장면 내각이 무너지고, 박정희 정부는 3선 개헌(1969)에 이어 1972년 10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유신 헌법(10월 유신)을 강행했습니다. 유신 헌법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간접 선출(연임 제한 철폐)하고, 국회의원 1/3 추천권과 헌법 효력까지 정지시키는 긴급조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초헌법적 독재 체제였습니다. - 이에 맞서 백기완·장준하의 개헌 청원 백만 인 서명 운동, 3·1 민주구국선언(1976), 그리고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과 부마 민주 항쟁(1979. 10, 부산·마산)이 일어났고, 결국 10·26 사태(1979)로 유신 체제가 막을 내렸습니다.4·19 혁명의 결정적 흐름: 3·15 부정선거 → 마산 시위와 김주열 열사 시신 발견(4.11) → 4·19 전국 학생·시민 봉기 → 대학교수단 시위(4.25) → 이승만 대통령 하야(4.26) → 내각책임제·양원제 개헌 및 장면 내각 출범!2. 한국 현대사 3대 민주화 운동(4·19 / 5·18 / 6월 항쟁) 완벽 비교
10·26 사태 직후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 반란(1979)으로 군권을 장악하고 시민들의 민주화 열기('서울의 봄')를 짓밟으면서 5·18 민주화운동(1980)과 6월 민주항쟁(1987)이 일어났습니다.| 비교 항목 | 4·19 혁명 (1960) | 5·18 민주화운동 (1980) | 6월 민주항쟁 (1987) |
|---|---|---|---|
| 저항 대상 | 이승만 정부 (자유당 독재) | 전두환 신군부 세력 | 전두환 정부 (제5공화국) |
| 직접적 원인 (도화선) | 3·15 부정선거, 마산 김주열 열사 시신 발견 | 12·12 사태 및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공수부대의 잔혹한 진압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월), 4·13 호헌 조치(직선제 개헌 거부),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6월) |
| 핵심 구호 및 전개 | *"부정선거 다시 하라"*, 대학교수단 시위("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 | *"비상계엄 철폐하라"*, 광주 시민군 조직, 전남도청 사수 항전, 주먹밥 나눔 공동체 | *"호헌 철폐, 독재 타도"*, 국민운동본부 결성, 6·10 국민대회 및 넥타이 부대 동참 |
| 역사적 결과 및 개헌 | 이승만 하야 내각책임제·양원제 개헌, 장면 내각 출범 | 신군부의 무력 진압 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7년 단임 간선제 개헌 | 6·29 민주화 선언 항복 수용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 (현행 제9차 개헌) |
3. 사료 포인트: 4·13 호헌 조치와 6·29 민주화 선언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폭발과 승리를 보여주는 핵심 사료를 확인해 봅시다. > [사료 1: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 조치 (1987. 4. 13)] > "나는 오늘 거듭되는 국론 분열과 혼란을 막기 위해 현행 헌법에 따라(체육관 선거로)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이며, 평화적 정부 이양과 서울 올림픽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할 것을 선언합니다." > 국민의 간절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묵살하고 기존 간선제 헌법을 지키겠다고 발표한 4·13 호헌 조치는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폭로(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및 연세대생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과 맞물려 500만 시민이 참여한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 [사료 2: 6·29 민주화 선언 (1987. 6. 29)] >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 1988년 2월 평화적 정부 이양을 실현해야 한다." > 시민들의 거센 항쟁에 굴복한 여당 대표 노태우가 발표한 선언으로, 여야 합의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헌법이 탄생했습니다.예제로 살펴보기
[실전 확인 문제] 다음 구호가 등장했던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옳은 것은? 「박종철을 살려내라!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직선제 개헌 쟁취하자!」 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내각책임제 개헌이 단행되었다. ②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 헌법이 제정되었다. ③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④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에 반대하는 6·3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정답: ③ 해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호헌 철폐(4·13 호헌 조치 반대)', '직선제 개헌 쟁취'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6월 민주항쟁의 결과 6·29 선언이 발표되고 현행 헌법인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9차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참고 근거와 확인 범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사료로 보는 6월민주항쟁 ↗
1987년 6월 항쟁의 사료와 6·29 선언
설명·예제·문제 구성 및 오류 수정 책임: 프리런. 위 자료는 표시한 주제를 확인하거나 더 읽기 위한 근거이며, 외부 기관의 공식 수업이나 감수본을 뜻하지 않습니다.
참고 자료 연결 점검: 2026-11-02. 제작 방식·검수 범위와 수정 기록에서 확인 범위를 볼 수 있습니다. 오류는 상단의 의견 보내기 또는 contact@freelearn.io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