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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개혁과 강화도 조약
1863년 고종 즉위 후 왕권 강화(비변사 폐지·경복궁 중건)와 민생 안정(서원 철폐·호포제), 통상 수교 거부 정책(병인·신미양요 격퇴)을 펼친 흥선대원군과, 1876년 최초의 근대적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분석합니다.
이 수업에서 해 볼 일
- 대원군의 정책과 개항 조약의 성격을 구별한다
먼저 알면 좋은 것: 19세기 세도 정치와 삼정의 문란(임술 농민 봉기) · 이양선의 출몰과 서양 제국주의의 통상 요구 · 통상 개화론의 대두
오늘의 목표
가입 없이 시작할 수 있어요. 설명을 읽고, 함께 연습한 뒤, 처음 보는 문제에서 직접 확인합니다.
1. 흥선대원군의 왕권 강화와 삼정(三政) 개혁 (1863~1873)
19세기 전반 안동 김씨 등 외척 가문의 세도 정치와 삼정의 문란(전정·군정·환곡)으로 농민 봉기(1811 홍경래의 난, 1862 임술 농민 봉기)가 끊이지 않고, 밖으로는 서양 이양선이 출몰하는 내우외환 속에서 1863년 12세의 고종이 즉위하자 국왕의 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하응)이 섭정으로서 강력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 왕권 강화 정책: 1. 세도 가문을 몰아내고 당파와 지역,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했습니다. 2. 세도 정치의 권력 기구였던 비변사를 사실상 폐지하고, 정치 기능은 의정부로, 군사 기능은 삼군부로 분리·부활시켰습니다. 3. 법전인 『대전회통』과 『육전조례』를 편찬하여 통치 규범을 재확립했습니다. 4. 임진왜란 때 불탄 왕실의 상징 경복궁을 중건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강제 기부금인 원납전을 거두고,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남발하여 극심한 물가 폭등(인플레이션)을 초래했으며, 백성을 공사에 강제 동원하고 성문 통과세(문세)까지 거두어 양반과 백성 모두의 원성을 샀습니다. - 민생 안정 및 재정 확충 (삼정 개혁): 1. 전정(토지세):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양반들이 숨긴 토지(은결)를 색출해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2. 군정(군포) - 호포제(戶布制) 실시: 조선 건국 이래 면세 특권을 누리던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혁신적인 호포제(마을 단위 공동 납부인 동포제 형태)를 실시하여 평민의 부담을 덜었습니다. 3. 환곡(고리대) - 사창제(社倉制) 실시: 아전들의 부정부패가 가장 심했던 환곡을 폐지하고, 면·리 단위로 덕망 있는 주민이 자치적으로 곡식을 대여·관리하는 사창제를 시행했습니다. 4. 서원 철폐(1871):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누리며 백성을 수탈하던 전국의 서원을 단 47개의 사액 서원만 남기고 600여 개소를 전격 철폐하여 국가 재정을 늘렸으나, 전국 유생들의 거센 반발(최익현의 탄핵 상소로 1873년 하야하는 배경)을 불렀습니다.흥선대원군의 양반 기득권 타파 2대 정책: ① 호포제(양반에게도 군포 징수) ② 서원 철폐(47개소만 남기고 철폐)! 이 두 정책은 민생 안정과 국가 재정 확충에는 큰 효과를 거두었으나 유생들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했습니다.2. 통상 수교 거부 정책(양요)과 강화도 조약(1876) 연대기
흥선대원군은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를 침략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쳤으나, 1873년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친정을 시작한 뒤 일본의 운요호 사건(1875) 무력 도발을 계기로 강화도 조약(1876)을 체결하며 마침내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연도 | 주요 역사적 사건 | 핵심 전개 과정 및 결과 |
|---|---|---|
| 1866. 1 | 병인박해 |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려다 실패한 후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천주교도 8천여 명 처형 |
| 1866. 7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며 약탈을 자행한 미국 상선을 평양 관민(박규수)이 불태워 침몰 |
| 1866. 9 | 병인양요 (프랑스) | 병인박해를 구실로 로즈 제독의 프랑스군 침입 한성근(문수산성)·양헌수(정족산성) 부대가 격퇴 (퇴각 시 외규장각 의궤 약탈) |
| 1868. 4 | 오페르트 도굴 사건 |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통상 요구를 위해 충남 예산의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침 (통상 거부 의지 더욱 강화) |
| 1871. 4 | 신미양요 (미국) |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로저스 제독의 미군 침입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 부대가 결사항전 끝에 전사(수자기 약탈), 미군 철수 후 전국에 척화비 건립 |
| 1875. 9 | 운요호 사건 (일본) | 대원군 하야(1873) 후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과 영종도를 불법 포격하며 개항 강요 |
| 1876. 2 | 강화도 조약 체결 | 일본과 맺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 (조·일 수호 조규) |
3. 사료 포인트: 척화비와 강화도 조약 조문 심층 해독
신미양요 직후 건립된 척화비(1871)와 개항을 연 강화도 조약(1876)의 핵심 조항은 시험에서 매번 대조 출제됩니다. > [사료 1: 척화비 비문 (1871)] >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하는 것이요(洋夷侵犯 非戰則和),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主和賣國)." > [사료 2: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1876. 2) 핵심 조항] > - 제1관: "조선국은 자주국이며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전통적 종주권(간섭)을 배제하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쉽게 만들려는 외교적 포석입니다. > - 제4·5관: "부산 외에 2개 항구(원산, 인천)를 개항한다." 부산(경제)·원산(군사, 러시아 남하 견제)·인천(정치, 수도 한양 인접)의 3포 개항. > - 제7관: "일본국 항해자가 조선 해안을 자유롭게 측량하도록 허가한다." 해안 측량권 허용 (영해 주권 침해). > - 제10관: "일본국 국민이 조선국 개항장에서 죄를 범한 경우 모두 일본국 관원이 심판한다." 영사재판권(치외법권) 인정 (사법 주권 침해). > - 부록 및 통상 장정(1876. 8): 개항장 내 일본 화폐 유통 허용,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 일본 상품에 대한 무관세(관세권 미설정) 규정으로 조선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예제로 살펴보기
[실전 확인 문제] 1876년 체결된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및 부속 조약의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조선이 자주국임을 명시하여 청의 간섭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② 부산 외에 원산과 인천 두 곳의 항구를 추가로 개항하도록 하였다. ③ 해안 측량권과 영사재판권(치외법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④ 타국의 부당한 침해가 있을 시 서로 돕는다는 거중조정 조항이 포함되었다.- 정답: ④ 해설: '거중조정'과 '최혜국 대우', '관세 부과' 조항이 처음 들어간 조약은 1882년 미국과 체결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입니다. 강화도 조약(1876)에는 해안 측량권과 영사재판권이 포함되었고 부속 통상 장정에는 무관세·무제한 곡물 유출이 규정되었습니다.
참고 근거와 확인 범위
-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하응 ↗
흥선대원군의 정치와 통상 정책
설명·예제·문제 구성 및 오류 수정 책임: 프리런. 위 자료는 표시한 주제를 확인하거나 더 읽기 위한 근거이며, 외부 기관의 공식 수업이나 감수본을 뜻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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