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는 수업 · 한국사

외세의 침략 극복과 무신정변

10~13세기 거란(서희·강감찬), 여진(윤관의 별무반·동북 9성), 몽골(강화도 천도·삼별초)의 침략을 극복한 고려의 대외 항쟁사와, 문벌 귀족 사회를 무너뜨린 무신정변(1170) 및 공민왕의 반원 자주 개혁을 배웁니다.

이 수업에서 해 볼 일

  • 고려 대외 전쟁과 국내 정치 변동의 원인을 구별한다

먼저 알면 좋은 것: 고려 문벌 귀족 사회의 성립과 이자겸의 난·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10~13세기 동아시아 유목 제국(요·금·원)의 흥망 · 권문세족의 대농장 확대와 신진 사대부의 성장

오늘의 목표

가입 없이 시작할 수 있어요. 설명을 읽고, 함께 연습한 뒤, 처음 보는 문제에서 직접 확인합니다.

판단 과정과 비교 사례

고려의 대외 전쟁은 거란·여진·몽골을 시기와 대응 방식으로 나누어 보자. 서희의 담판과 강감찬의 귀주대첩은 모두 거란 관계지만 외교와 전투라는 차이가 있다.1170년 무신정변 뒤 권력 구조가 변했어도 왕과 과거제가 즉시 모두 없어지지는 않았다. 권력 다툼과 농민·천민의 저항을 함께 살펴야 사회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몽골과의 강화, 개경 환도와 삼별초 항쟁은 연결된 과정이다. 거란 전쟁과 뒤섞지 말고 고려 내부의 선택과 저항도 구분하자.

1. 고려의 3대 북방 민족 항쟁사 (거란 · 여진 · 몽골)

고려는 북진 정책과 다원적 국제 질서 속에서 북방 유목 민족인 거란(요), 여진(금), 몽골(원)의 잇따른 대규모 침략을 특유의 외교력과 끈질긴 군사 항쟁으로 이겨냈습니다.
침략 세력 (시기)침입 단계 및 주요 배경고려의 대응 및 영웅·전투역사적 결과 및 문화유산
거란 (요) (10~11세기 초)- 1차(993): 송과의 단교 및 고구려 옛 땅 반환 요구
- 2차(1010):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입(개경 함락)
- 3차(1018): 강동 6주 반환 요구 침입
- 1차: 서희(徐熙)의 외교 담판으로 피 흘리지 않고 강동 6주 획득
- 2차: 양규 장군의 맹활약
- 3차: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1019) 대승
개경 주위에 나성(羅城) 축조, 압록강~도련포에 천리장성 축조, 초조대장경 조판, 고려·송·거란 세력 균형
여진 (금) (12세기 초)완안부 중심 부족 통일 후 고려 국경 침범윤관(尹瓘)의 건의로 기병 중심 특수 부대 별무반(신기군·신보군·항마군) 창설 →\rightarrow 여진 정벌 후 동북 9성 축조(1107) (1년 뒤 반환)이후 여진이 금(金)을 건국하고 사대 요구 →\rightarrow 이자겸이 수용(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 배경)
몽골 (원) (13세기, 1231~1270)몽골 사신 저고여 피살 사건을 구실로 약 40년간 6차례 이상 침입- 1차 침입 시 박서의 귀주성 전투
- 최우 무신 정권이 강화도로 천도(1232)하여 장기 항전
- 김윤후가 처인성 전투에서 적장 살리타 사살, 충주성에서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하층민과 승리
- 개경 환도(1270)에 반발한 삼별초(배중손·김통정)가 강화도 →\rightarrow 진도(용장성) →\rightarrow 제주도(항파두리성)로 옮기며 끝까지 항전
황룡사 9층 목탑·초조대장경 소실,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판각 완성
북방 민족과의 관계 흐름: 거란(서희 강동 6주 → 양규 → 강감찬 귀주대첩 → 천리장성·나성) → 여진(윤관 별무반 → 동북 9성) → 몽골(최우 강화도 천도 → 김윤후 처인성·충주성 → 팔만대장경 → 개경 환도 및 삼별초 항쟁)!

2. 무신정변(1170)과 최씨 무신 정권, 하층민의 봉기

12세기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어 이자겸의 난(1126)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 김부식 진압)이 일어났으나 지배층은 반성하지 않고 문신 우대·무신 차별 정책을 지속했습니다. 마침내 1170년 의종의 보현원 행차 도중 정중부·이의방·이고 등 무신들이 정변(무신정변)을 일으켜 문신들을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 무신 집권기 권력 변천과 통치 기구: 1. 초기 혼란기 (이의방 →\rightarrow 정중부 →\rightarrow 경대승 →\rightarrow 이의민): 무신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쟁탈전이 벌어졌으며, 최고 무신 회의 기구인 중방(重房)을 중심으로 통치했습니다(경대승은 신변 호위 기구인 도방 설치, 천민 출신 이의민이 최고 권력자에 오름). 2. 최씨 무신 정권 4대 60년 (최충헌 →\rightarrow 최우 →\rightarrow 최항 →\rightarrow 최의): 1196년 이의민을 제거한 최충헌은 개혁안인 봉사 10조를 올리고 최고 집정 기구인 교정도감(교정별감)을 설치했으며 사병 기구인 도방을 확대했습니다. 아들 최우는 자신의 집(사저)에 인사 행정 기구인 정방(政房)과 문인 자문 기구인 서방(書房)을 설치하고 군사 조직으로 삼별초(좌별초·우별초·신의군)를 조직했습니다. - 무신 집권기 농민·천민의 신분 해방 운동: 천민 출신 이의민의 집권에 자극받고 무신들의 가혹한 수탈에 분노한 하층민들이 곳곳에서 봉기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주 명학소(특수 행정 구역) 주민인 망이·망소이의 난(1176), 경주 지역 김사미·효심의 난, 그리고 최충헌의 사노비였던 만적(萬積)이 개경에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일으킨 신분 해방 모의 사건(1198)이 일어났습니다.최충헌 vs 최우 기구 구분: 최충헌은 '교정도감(최고 권력 기구) + 도방 확대', 최우는 '정방(인사권) + 서방(문인 숙위) + 삼별초(야별초에서 분화) + 강화도 천도'입니다! 시험에서 최충헌과 최우의 기구를 섞어 출제하므로 명확히 구분하세요.

3. 사료 포인트: 서희의 외교 담판과 공민왕의 반원 자주 개혁(14세기)

거란 1차 침입 당시 서희의 담판과, 원 간섭기를 끝낸 공민왕(재위 1351~1374)의 개혁 사료를 확인해 봅시다. > [사료 1: 서희와 거란 장수 소손녕의 외교 담판 (993)] > - 소손녕: "너희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 거란의 소유인데 왜 침범하였는가? 또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왜 바다 건너 송나라만 섬기는가?" > - 서희: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바로 고구려의 옛 땅을 계승한 나라이기에 국호도 고려(高麗)라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만약 국경을 논한다면 거란의 동경(요양)까지 다 우리 땅인데 어찌 침범했다 하는가? 또한 압록강 안팎에 여진족이 가로막고 있어 거란과 사신을 통하지 못할 뿐이니, 여진을 몰아내고 땅을 돌려주면 어찌 교류하지 않겠는가?" > →\rightarrow 거란의 침입 목적이 영토가 아니라 '고려와 송의 군사 동맹 차단'에 있음을 간파하고 강동 6주를 얻어낸 한국 외교사의 백미입니다. [공민왕의 반원 자주 개혁과 왕권 강화 (14세기 중엽)] 원(몽골)이 쇠퇴하고 명나라가 흥기하는 국제 정세 변화를 틈타 공민왕은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1. 반원 자주 정책: 몽골풍(변발·호복) 폐지, 친원파 기철 일파 숙청, 내정 간섭 기구인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고려의 관제(2성 6부)와 연호 복구, 원에 빼앗겼던 철령 이북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수복(1356)하여 천리장성 이남 영토 회복. 2. 왕권 강화 및 사회 개혁: 최우가 설치했던 인사 기구인 정방 폐지, 승려 신돈(辛旽)을 판사로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을 설치함으로써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강탈한 토지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양인을 해방시켰으며, 성균관을 순수 유학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여 신진 사대부를 육성했습니다.

예제로 살펴보기

[실전 확인 문제] 고려 공민왕이 추진한 개혁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다. ②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영토를 되찾았다. ③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을 조직하고 동북 9성을 축조하였다. ④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켰다.
  1. 정답: ③ 해설: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을 편성하여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축조한 것은 12세기 초(숙종·예종 대)의 사실입니다. ①, ②, ④와 정방 폐지, 몽골풍 금지, 성균관 정비 등은 모두 14세기 중엽 공민왕의 반원 자주·왕권 강화 개혁입니다.
확인: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서희의 외교 담판(강동 6주)과 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으로 물리치고 천리장성과 개경 나성을 쌓았다.

참고 근거와 확인 범위

설명·예제·문제 구성 및 오류 수정 책임: 프리런. 위 자료는 표시한 주제를 확인하거나 더 읽기 위한 근거이며, 외부 기관의 공식 수업이나 감수본을 뜻하지 않습니다.

참고 자료 연결 점검: 2026-11-02. 제작 방식·검수 범위와 수정 기록에서 확인 범위를 볼 수 있습니다. 오류는 상단의 의견 보내기 또는 contact@freelearn.io로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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