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농민 운동과 갑오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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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 운동(1894)의 배경과 4단계 전개 과정
1860년 경주 몰락 양반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東學)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라는 인간 평등 사상과 후천개벽을 내세워 삼남 지방 농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2대 교주 최시형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하며 교단 조직(포접제)을 정비한 가운데, 1894년 마침내 탐관오리의 학정과 외세의 경제 침탈에 맞선 거대한 농민 전쟁이 폭발했습니다.
제1차·제2차 갑오개혁과 을미개혁(1894~1895) 비교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한 직후 김홍집 내각을 중심으로 단행된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은 외세(일본)의 간섭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갑신정변과 동학 농민군의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을 근대 사회로 전환시켰습니다.
| 개혁 단계 | 주도 기구 및 내각 | 핵심 정치·경제·사회 개혁 내용 |
|---|---|---|
| 제1차 갑오개혁 (1894. 7~12) | 군국기무처 (초대 총재 김홍집, 흥선대원군 섭정, 자주적 성격 강함) | - 정치: 청의 연호 폐지(개국 기년 사용), 왕실(궁내부)과 정부(의정부) 분리, 6조를 8아문으로 개편, 과거제 폐지 - 경제: 재정 일원화(탁지아문), 조세 금납제(세금을 화폐로 납부), 은본위 화폐 제도, 도량형 통일 - 사회: 공사 노비법 혁파(신분제 완전 폐지), 조혼 금지, 과부의 재가 허용, 연좌제·고문 폐지 |
| 제2차 갑오개혁 (1894. 12~1895. 7) |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 (군국기무처 폐지, 일본 간섭 심화) | - 홍범 14조 반포(최초의 근대적 헌법 성격) - 의정부를 내각으로, 8아문을 7부로 개편, 지방 8도를 23부로 개편 - 사법권 독립(재판소 설치), 근대적 교육 입국 조서 반포(한성사범학교 등 설립) |
| 을미개혁 (1895. 8~1896. 2) | 제4차 김홍집 친일 내각 (을미사변 직후 단행) | - 태양력(양력) 사용, '건양(建陽)' 연호 제정 - 단발령(상투 자르기) 강행 유생들의 을미의병 폭발 배경 - 종두법 시행, 우체사 설치, 소학교 설립, 중앙군 친위대·지방군 진위대 설치 |
사료 포인트: 백산 4대 강령과 폐정 개혁안 12개조
동학 농민군이 내건 개혁 강령과 갑오개혁 법령을 사료로 확인해 봅시다.
동학 농민군의 폐정 개혁안 중 노비제 폐지, 과부 재가 허용, 문벌 타파 등은 제1차 갑오개혁(군국기무처)에 전격 반영되었으나, 농민들이 가장 간절히 원했던 '토지의 평균 분작(토지 개혁)'은 갑오개혁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선지로 가장 많이 출제됩니다!
정답: ④
해설: 제1차 갑오개혁은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신분제(노비제) 철폐, 과부 재가 허용, 과거제 폐지, 재정 일원화(탁지아문) 및 조세 금납제를 단행했으나, 농민들의 핵심 요구였던 토지 개혁(토지 평균 분작)은 외면하였습니다.
핵심 요약
- ✓동학 농민 운동은 제폭구민·보국안민을 기치로 내건 반봉건(1차 봉기)·반외세(2차 봉기) 민족 운동이었다.
- ✓전주 화약 체결 후 전라도 일대에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 개혁안 12개조를 실천했다.
- ✓제1차 갑오개혁은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신분제(노비제) 폐지, 과부 재가 허용, 조세 금납화, 탁지아문 재정 일원화를 단행했다.
- ✓제2차 갑오개혁(홍범 14조·재판소 설치)과 을미개혁(태양력·단발령·건양 연호)을 거치며 근대적 국가 제도가 도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