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 체제의 개편 (대동법과 균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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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납의 전세화 혁명: 대동법(大同法, 1608)의 시행과 경제적 파급 효과
조선 전기 3대 세금(전세·공납·군역) 가운데 농민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 것은 지방의 특산물을 가구(호, 戶) 단위로 바치게 한 공납(貢納)이었습니다. 생산되지 않는 물품을 배정받거나 품질 검사를 핑계로 서리와 상인이 결탁해 특산물을 대신 납부하고 농민에게 수십 배의 쌀이나 베를 뜯어내는 방납(防納)의 폐단이 극에 달해 농민들이 고향을 버리고 도망치는 유망(流亡) 현상이 속출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608년(광해군 원년) 영의정 이원익의 건의로 선혜청(宣惠廳)을 설치하고 경기도에서 처음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했습니다. 양반 지주들의 거센 반대 속에서도 효종 때 김육(金堉)의 끈질긴 노력으로 충청도·전라도로 확대되어, 마침내 1708년(숙종 34년) 평안도·함경도(잉류 지역)·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시행되기까지 무려 100년이 걸렸습니다.
조선 후기 3대 수취 체제 개편(영정법 · 대동법 · 균역법) 완벽 비교표
전세(토지세), 공납(특산물), 군역(군포)의 3대 세금이 조선 후기에 어떻게 개편되었는지 표로 한눈에 비교해 봅시다.
| 세목 구분 | 개편 법안 (시행 시기·왕) | 개편 배경 (이전의 폐단) | 핵심 개편 내용 및 부족분 보충책 | 결과 및 역사적 한계 |
|---|---|---|---|---|
| 전세 (토지세) | 영정법 (永定法) (1635, 인조) | 세종 때의 공법(전분6등·연분9등법)이 문란해져 풍흉에 관계없이 최저 세율 적용 관행화 | 풍흉에 관계없이 토지 1결당 쌀 4~6두로 세율을 영구히 고정 | 전세율은 낮아졌으나 각종 부가세(삼수미 등)가 늘어났고, 지주가 전세를 소작농에게 떠넘겨 영세 농민에게는 혜택이 적었음 |
| 공납 (특산물) | 대동법 (大同法) (1608 광해군 경기도 효종[김육] 1708 숙종 전국) | 서리·상인이 특산물을 대납하고 폭리를 취하는 방납의 폐단 (이이·유성룡 등이 수미법 건의) | 선혜청 설치, 가호별 특산물 대신 토지 1결당 쌀 12두(무명·삼베·동전 가능) 징수 | 무토지 농민 부담 해소, 공인(貢人)의 등장으로 수공업 및 상품 화폐 경제 비약적 발달 |
| 군역 (군포) | 균역법 (均役法) (1750, 영조) | 군대 대신 군포(1년 2필)를 내는 방군수포·수포제 확산 후, 죽은 사람(백골징포)과 어린아이(황구첨정)에게까지 징수, 이웃·친척 연대 책임(인징·족징) | 균역청 설치, 농민의 군포 부담을 1년 2필에서 1필로 반감 [감소 재정 보충 3책]: ① 지주에게 토지 1결당 쌀 2두(결작[結作]) 부과, ② 부유한 상민에게 선무군관포(1필) 징수, ③ 어장세·염세·선박세를 국가 재정으로 귀속 | 농민의 군역 부담이 일시 경감되었으나, 양반에게는 여전히 군포를 부과하지 못했고 결작이 소작농에게 전가됨 (훗날 흥선대원군의 호포제로 해결) |
사료 포인트: 방납의 폐단(대동법)과 결작·선무군관포(균역법) 해독
수취 체제 개편 문제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대동법과 균역법 사료를 비교해 봅시다.
"선혜청에서 아뢰기를, '각 고을의 토산물을 바치는 공물이 아전들의 농간(방납)으로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릅니다. 이제부터 민호(집)에 부과하던 공물을 모두 혁파하고, 전결(토지 결수)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1결당 봄가을로 쌀 6두씩 합 12두를 거두어 경창으로 운송하고 공인(貢人)에게 값을 주어 물품을 조달하게 하소서' 하니 왕이 따랐다."
"양역(군포)의 폐단이 백골징포와 황구첨정에 이르렀으니 어찌 백성이 살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 양인의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영구히 감한다. 이로 인해 줄어드는 군수 재정은 어염세와 선박세를 균역청에 귀속시키고, 한가히 노는 부유한 양인에게 선무군관(選武軍官) 칭호를 주어 군포 1필을 거두며, 토지 1결마다 쌀 2두씩 결작(結作)을 거두어 보충하게 하라."
정답: ④
해설: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고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결작(1결당 쌀 2두), 선무군관포, 어염세·선박세를 거둔 것은 1750년 영조 때 실시한 '균역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①, ②, ③은 모두 공납 제도를 개혁한 '대동법'의 핵심 내용입니다.
핵심 요약
- ✓영정법(인조, 1635)은 풍흉에 관계없이 전세(토지세)를 토지 1결당 쌀 4~6두로 고정한 법안이다.
- ✓대동법(광해군 시작, 숙종 전국 확대)은 방납의 폐단을 막기 위해 가호별 특산물을 토지 1결당 쌀 12두(베·동전)로 전환한 개혁이다.
- ✓대동법 시행으로 무토지 농민의 부담이 사라지고 관청 조달 상인인 '공인'이 성장하여 상품 화폐 경제가 크게 발달했다.
- ✓균역법(영조, 1750)은 농민의 군포를 1년 2필에서 1필로 반감하고, 부족 재정을 결작(1결당 2두)·선무군관포·어염세로 보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