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과 남북 분단, 6·25 전쟁
유물과 표본
사진은 출처와 이용 조건을 확인한 경우에만 표시합니다.
사진 출처·이용 조건 확인 중
8·15 광복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까지의 연대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우리 민족은 마침내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여운형과 안재홍이 중심이 되어 치안과 건국을 준비하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조직했으나, 일본군 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소련군, 남쪽에는 미군(미군정)이 진주하면서 냉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 시기 | 주요 역사적 사건 | 핵심 내용 및 통일정부 수립 노력 |
|---|---|---|
| 1945. 12 |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 미·영·소 외상이 모여 ① 미·소 공동위원회 설치, ② 임시 민주정부 수립, ③ 최대 5년간 4개국 신탁통치(후견) 결정 우익(김구·이승만)은 신탁통치 반대 운동, 좌익(박헌영)은 반탁에서 총체적 지지(찬탁)로 선회하며 좌우 대립 격화 |
| 1946. 6 | 이승만의 정읍 발언 |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무기 휴회되자, 이승만이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를 조직해야 한다"며 최초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론 제기 |
| 1946. 7~ | 좌우합작운동 | 단독정부 수립을 막기 위해 중도 좌파 여운형과 중도 우파 김규식이 좌우합작위원회를 결성하고 좌우합작 7원칙(1946. 10) 발표 1947년 여운형 암살과 미·소 공위 최종 결렬로 좌절 |
| 1947. 11 | 유엔 총회 결의 | 미국이 한국 문제를 유엔에 상정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감시하에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 총선거 실시 결의, 그러나 소련과 북한의 입북 거부로 '가능한 지역(남한)만의 단독 선거'로 변경(1948. 2) |
| 1948. 4 | 남북협상 (김구·김규식) | 김구가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을 발표하고 김규식과 함께 38선을 넘어 평양에서 김일성·김두봉과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개최 (제주 4·3 사건 발발 시기) |
| 1948. 5. 10 | 5·10 총선거 |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적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 실시 제헌 국회의원 198명 선출 |
| 1948. 8. 15 | 대한민국 정부 수립 | 제헌 국회가 제헌 헌법(7. 17, 대통령 중심제)을 제정하고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 선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 (유엔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 |
제헌 국회의 활동(반민특위·농지개혁)과 6·25 전쟁(1950~1953)
2년 임기의 제헌 국회(1948~1950)는 두 가지 중대한 역사적 과업을 추진했습니다.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국의 극동 방위선(애치슨 라인)에서 한국과 타이완을 제외하자, 소련(스탈린)과 중국(마오쩌둥)의 지원을 약속받은 북한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도선 전역에서 기습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사료 포인트: 이승만의 정읍 발언 vs 김구의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남북 분단의 기로에서 단독정부론과 통일정부론이 맞선 두 핵심 사료를 비교해 봅시다.
"이제 무기 휴회된 미·소 공동위원회가 다시 열릴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다."
"한국이 있어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어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유엔 소총회가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결의한 직후 김구가 발표하고 평양 남북협상(1948. 4)에 나서게 된 감동적인 명문 사료입니다.
정답: ②
해설: 애치슨 선언(50.1) 및 북한군 기습 남침(50.6.25) → 낙동강 방어선 구축 → 인천상륙작전 및 서울 수복(50.9) → 압록강 진격 → 중국군 개입 및 흥남 철수·1·4 후퇴(50.12~51.1) → 휴전 회담 개시(51.7) → 반공포로 석방(53.6) → 정전 협정 체결(53.7.27) →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53.10) 순서입니다.
핵심 요약
-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1945. 12)의 신탁통치 결정을 둘러싸고 좌우 대립이 격화되자 여운형·김규식은 좌우합작운동을, 김구·김규식은 남북협상을 추진했다.
-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는 제헌 헌법을 공포하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으며, 반민특위 설치와 농지개혁법(유상 매수·유상 분배)을 제정했다.
- ✓1950년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 → 낙동강 방어선 → 인천상륙작전 → 중국군 개입(1·4 후퇴) → 정전 협정(1953. 7) 순으로 전개되었다.
- ✓전쟁 직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1953)으로 한미 동맹 체제가 구축되었으나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었다.